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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09학년도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
수강강좌(교수님) () 평  가 ★
등록일 2015.12.21 조회수 1,868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임태열, 2009학년도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합격<?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자신이 인생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평생에 걸쳐 매진해도 좋을 일이라 확신한다면 1,2년 정도 미친 듯이 노력하는 것도 그렇게 고생만은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통대에 입학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약 2년간, 오직 이 목표만을 위해서 달렸습니다.

 

저는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했고, 제대 후 약 1년 정도 필리핀과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군 입대 전까지는 영어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특별히 영어에 노출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필리핀에 가서 영어 공부의 재미를 처음으로 느끼게 됐고, 다행히 그 후로는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게 됐습니다. 2006 12월 대학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한 어학원에서 통역대학원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왠지 모르지만아 이거 정말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월부터 이창용 선생님의 수업을 신청해 듣기 시작했습니다. 3월 개강 후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이창용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자료를 부탁해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이 정말 재밌어서 별로 힘든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2007년도 입시 준비]

 대학 기말고사가 끝난 6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이창용 선생님 종합반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시험까지는 약 4개월여 밖에 남지 않았지만 당차게도(지금 생각하면 감히) ‘올해 꼭 합격하겠다!’ 는 마음을 굳게 먹었던 것 같습니다. 잠깐 이창용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는 선생님을 창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정말 날카롭고 예리하게 학생들의 장단점을 꿰뚫어 보시고 적절한 시기에 짧고 굵은 처방을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시키시는 그대로만 했습니다. 선생님이 발음을 지적하셔서 한 달 동안 볼펜을 물고 연습하기도 했고, 스터디면 스터디, 에세이 연습이면 에세이, 단어 암기면 단어 암기 등 선생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대로만 했습니다. 그만큼 선생님을 100%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덕택에서인지 비교적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외대 1차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물론 당시 1차 시험 형식이 갑작스럽게 변해서 제 실력을 내지 못하신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2차 시험을 앞두고 부족한 영어 말하기 실력을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영어말하기에만 시간을 쏟아 부었고 이것이 결국은 패인이 됐습니다. 2차 시험일에 영한 통역 시험에서 한국말이 한 마디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2007. 12]

 정말 감사하게도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이 믿어주고 격려해준 덕분에 한 해 더 준비해보겠다는 결심을 비교적 일찍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쉽고 자연스러운 생활 영어에 익숙해지기 위해 EBS 귀가 트이는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수백 번이고 들으면서 억양과 발음을 따라하고 내용은 모두 외웠습니다(지금도 외우라면 외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당시 귀가 트이는 영어는 이현석 선생님이 진행하셨는데 책 중간 중간 한영 통역 실습까지 나와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공부 교재였습니다.

 

[2007. 1 ~ 2008. 4]

 이 기간 동안에는 이창용 선생님의 추천으로 양시래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앞에서 이창용 선생님을 날카로운 창에 비유했는데 양시래 선생님은 단단한 방패 같은 분이십니다. 선생님께 보다 정교하게 번역하는 법과, 일견 번역하기엔 까다로워 보이는 내용도 뜻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고급스럽게 돌아가는 법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번역의 정교함과 정밀함에는 정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시험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해양, 농경, 경제, 과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 자료와 번역 자료를 내어주셨고, 저는 그때 선생님의 번역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기에 번역해주신 자료만 무조건 다 외웠습니다. 리스닝 자료와 읽기 자료는 다시 읽어볼 만한 자료만 추려낸 뒤, 써먹을 수 있는 표현만 형광펜으로 긋고, 보고 보고 또 봤습니다. 특히 이창용 선생님 반과 같은 자료로 진행하는 Passage 수업이 가장 큰 도움이 됐습니다. Passage 수업은 선생님께서 다양한 매체들에서 선별된 글을 골라 Native speaker에게 녹음을 의뢰하고 이를 듣기 및 읽기 자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Economist지는 독해 실력을 높이기 위해 읽는 것이지만, 이들 자료들은 내용은 약간 쉬우면서도 써먹을 수 있는 문장들이 많아 매우 유용했습니다. 수업 방식은 복습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공부를 하다가 예전 자료의 내용을 잊어먹었다 싶으면 무조건 다시 확인하고 지나갔습니다. 물론 다시 찾아보기가 귀찮아아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생각이 수만 번도 더 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수개월 전의 자료를 다시 찾아봤습니다. 통대 입시 준비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내 영어와 한국어 갈고 닦고, 자신에게 철저히 냉정해져야 하며 어떤 표현이든 정답은 있을 것이기에 꼭 그 정답을 확인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표현을 영어로, 또는 한국어로 다 제대로 알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분명히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으로는 초반 몇 개월 정도 이런 방식으로 힘들게 공부하고 나자, 그 후부터는 처음 보는 내용이 나와도 대략 정답에 가깝게 말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공부도 훨씬 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원 수업 이외에도 이 기간 동안 계속해서 귀트영 및 파워 잉글리쉬 교재를 이용해 공부했습니다. 물론 복습과 외우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2008. 5 ~ 2008. 8]

 5월 달부터 집에서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했습니다. 집에서 공부하는 기간 중 공부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아침 5시에 기상했고 기상 후 한 두 시간 동안 가만히 그 동안 배운 것들을 머리 속에 되새겼습니다. 이것은 제가 효과적이라고 스스로 믿는 방법인데,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그 동안 배우거나 외운 영어 단어나 문장, 표현, 그리고 한국어도 마찬가지로 계속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웬만큼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새로운 글을 읽으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야 공부 양이 누적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영어 듣기는 학원 뉴스자료와 Passage를 주로 이용하고, 아이팟의 podcast도 적극 활용했습니다. 모든 듣기 자료는 sight translation을 해서 가장 적절하고 확실한 한국어 표현을 찾아낸 뒤 써먹을 수 있을 만한 영어 표현을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그 밖에도 영한 통역 연습은 YTN사이트의 해외 뉴스 보도 란이 정제된 한국어로 정리가 되어 있기에 크게 유용했습니다.

 

읽기 공부는 8월까지는 글을 천천히 읽으면서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을 숙지하는 식으로 공부했고 9월부터는 어떤 글이든 무조건 한 번에 읽고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요즘 1차 시험 읽기 부분 지문들이 시사적인 지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철학적이거나 인문학적인 지문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Economist지도 물론 좋지만 New Yorker지나 Slate magazine에서 그런 스타일의 지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글이 현학적이고 풍자적이어서 확실한 줄거리가 있는 Economist보다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이나 통역은 결국 연장선상에 있다는 판단 하에, 5월부터 하루에 한 편씩 번역 연습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처음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쉽지 않았지만, 9월쯤 되자 속도가 많이 빨라진 것을 느낄 수 있어서 하루에 두 편 내지는 세 편씩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번역하는 것에 큰 재미를 느껴서 별로 고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번역한 내용 중 확신이 가지 않는 것이 있으면 구글에서 확인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문제가 있는 것이, 구글에서 나타나는 조회 결과를 전적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콩글리쉬적 표현이 많이 검색될 수도 있고, 한국이 아니더라도 기타 영어를 원어로 사용하지 않는 국가들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번역 연습은 꼭 학원을 다니면서 검증된 영어를 배우시길 권해드립니다.

 

[2008. 9 ~ 2008. 10]

 이 기간 동안에는 실전 감각을 되찾기 위해 이창용 선생님 종합반을 등록해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모의고사 준비로 이창용 선생님 모의고사 반을 들었고, 과거 기출문제를 풀어봤습니다. 그 동안 다양한 글을 빨리 읽는 연습을 해서인지, 예전보다 읽는 시간이 확실히 빨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통대 1차 시험은 난이도나 방식 등 모든 면에서 시중의 다른 영어 시험들과 비교가 어렵습니다. 딱히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것보다는 한 2003년도 기출 문제부터 샅샅이 흝으시면서 분석하는 방법을 추천 드립니다. 특히 이 시험은 듣기 혹은 읽기 내용을 이해하고도 문제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시험 출제 위원의 문제 출제 의도 및 방식을 꼭 파악하고(함정을 어떤 식으로 내는지 등) 시험에 임하셔야 합니다.

 

[2008년도 1차 시험]

 작년에 이어 두 번째여서 그런지 작년처럼 긴장되지는 않았고 잠도 잘 잤지만, 오히려 긴장이 안 되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한국어 시험은 무난하게 봤습니다. 나중에 읽기 지문을 찾아보니 시사IN지에서 출제된 것이 몇 편 있었습니다. ‘태산명동의 서일필이니구두선이니 하는 정말 어려운 문제들 몇 개 빼고는 난이도는 평이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영어 시험이었습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집중이 되지 않고 정신이 산만했습니다. 더군다나 점심을 먹은 뒤 졸음까지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듣기 지문 대여섯 개 정도가 멍한 상태에서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다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년간의 공부가 여기서 물거품이 되는구나 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허벅지를 꼬집고 깨물고 고개를 흔드는 등 온갖 노력 끝에 조금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이 가장 큰 고비였던 것 같습니다.

 

[2008년도 2차 시험]

 1차 합격 확인 후, 작년의 경험도 있었기에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1차 시험 후 2차 시험이 1주일 뒤에 있기에 기간이 상당히 어중간한데, 이 기간 동안 총정리를 하겠다, 자료를 다 외우겠다 등등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냥 평소 일정대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어나 영어나 어떠한 말이든 바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해야 합니다.

 

다음은 번역 및 에세이 시험에 관해서 입니다. 영한 번역주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올해는 한영 번역보다는 영한 번역이 다소 까다로웠던 것 같습니다.

 

<어떤 특정한 개인의 언어를 연구할 때, 신뢰할 만한 연구 자료를 대량으로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한 연설이나 인터뷰 내용을 녹취한 테이프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연설이나 인터뷰는 개인의 자연스러운 언어라기보다는 설정된 상황 하에서 표현되는 상대적으로 인위적이고 공식적인 언어이므로 개인의 언어 연구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그 사람이 가족들이나 지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토대로 연구하는 것이다.>

 

한영 번역 시험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의 대한 문제를 다룬 조선일보 9 29일자 사설이었습니다. 어쩐지 내용이 친숙하다 했더니 예전 이창용 선생님 수업 시간에 번역 과제로 다룬 것과 거의 같은 글(시험 출제 시 약간 변형을 가합니다)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능한 한 수정을 피하기 위해, 영한이든 한영이든 일단 머릿속으로 모든 내용을 정리하면서 가장 좋은 표현을 떠올려봤습니다. 이 과정이 대략 20분 정도 걸렸고 쓰는 데는 5분에서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글 에세이 주제는, 올해 핵심 이슈였던 인터넷 실명제 논란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이 문제가 나올 것을 예상하고 개인적으로 한번 정리해봤기에 어렵지 않게 써 내려갔습니다. 영어 에세이는 약간 예상을 벗어난 주제가 나왔는데 바로좌편향 역사 교과서 수정에 관해 찬성이나 반대 입장에서 논하시오였습니다. 물론 나올만한 주제였지만 예상을 벗어낫다고 말한 이유는 그것이 영어에세이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은 주제였지만 다행히 정치외교학과 출신이어서 조금 아는 바가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려웠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더군요.

 

[구술시험]

 작년 구술시험 때는 지나치게 긴장하고 주눅이 들었던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습니다. 이창용 선생님께서도 늘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구술시험에서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나 영어 실력 못지않게 패기와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잘 모르겠어도 미련이 남지 않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오자라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물론 좀 위험한 생각이지만 그만큼 호기로워 보이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올해는 구술시험 방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영한/한영 통역 방식이 아니라, 인터뷰 및 Sight translation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소요 시간이 기존 5-6분 정도에서 15-20분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저는 일요일 오전 마지막 순서였는데, 9부터 기다리기 시작해서 오후 3시쯤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오래 기다릴 줄 모르고 먹을 것이나 마실 것 등을 하나도 준비해가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자 조금 힘들었습니다. 이 점 유의하시고 대비를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너무 스터디 하느라 무리하지 말고 페이스 조절도 잘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마지막 순서여서 중간에 졸기도 하고 긴장이 풀릴 때로 풀려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점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시험 약 1시간 정도 전부터 한국어와 영어를 끊임없이 중얼거리면서 입을 푼 뒤 시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작년에는 2층에서 시험을 보았고 교수님도 여섯 분이셨는데, 올해는 시험장이 1층이었고 교수님은 외국인 교수님 두 분, 곽중철 교수님과 다른 여교수님 두 분 등 총 네 분이 앉아계셨습니다. 또 방도 훨씬 넓어서 작년보다 압박감이 덜했습니다.

 

들어가니까 좌측에 앉아계신 외국인 교수님이 먼저 제 이력 중 필리핀 어학연수 시절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시더군요. 그냥 간단히 대답해달라고 하셨는데, 제가 평소에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점이 많아 길게 대답했습니다. 대강필리핀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은 서로 이해가 많이 결여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은 필리핀하면 그냥 가난한 나라로만 생각하고 진지하게 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필리핀 여성만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부분에서 교수님들이 좋게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 영-한 시험이었습니다. 우측에 뒤집혀있는 네 편의 글 중 무작위로 한 장을 고르게 했습니다. 제가 골랐던 내용은 최근 경제위기 대처에 관한 연설문이었습니다. 잠깐 내용을 되짚어보면,

 

<지금은 현재 경제 위기 극복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이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향후 10, 또는 수십 년간의 세계 경제의 향방이 판가름 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얼마 전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유럽 연합 등 다른 지역에서도 곧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통화 정책과 금융 정책을 적절히 맞물려 사용함으로써 경제 극복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을 교수님이 그만 이라고 하실 때까지 소리 내어 크게 읽습니다. 그리고 다시 덮어놓고 한글로 통역하는 것입니다.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아서 중간에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을 약간 에둘러대긴 했지만 무난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영 시험도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말한 대로 적으면 대략 이러한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의 어부들이 소말리아 연안에서 해적들에게 납치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에만 21명의 한국 어부들이 이들 해적들에게 납치당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들을 돕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 나라의 군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즉각 소말리아 근해에 한국 해군을 파견하여 우리 어부들을 구해내야 한다.>

 

시험장 분위기는 내내 우호적이었고 곽중철 교수님은 몇 차례 농담까지 하시더군요. 역시 대담한 태도로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너무나 후련했고 한편으론 잘 본 것 같아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귀가 입에 걸린 채로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얼마 전 약소한 선물을 들고 찾아뵈었을 때 이창용 선생님께서지금이 가장 좋을 때다라고 하시더군요. 선생님 말씀대로 이제 시작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앞으로는 훨씬 가벼운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통대 합격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시험 날이 되자 모든 조건이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저도 그것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신기하다는 말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말 자기가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면 모든 조건들이 자신에게 유리해지는 것처럼 느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믿으니까요.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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