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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김0종, 2024학년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 통역전공 합격
수강강좌(교수님)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 통역전공(이창용어학원) 평  가 ★
등록일 2023.12.07 조회수 1,485

 

1. 먼저 간단한 합격 소감을 들려주세요.

- 먼저 저를 인도해주신 하느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저 혼자 힘으로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순수 쌩 국내파로서(초중고 다 한국에서 졸업, 지방 일반고 출신, 관련 업무경험 전무, 수능 3수, 해외 체류 경험 전무, 심지어 학부 전공도 어문계열이 아님, 로스쿨 입시 3년가량 준비하고 실패 등…) 통대 입시공부한지 10개월만에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한 것은 운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솔직히 교수님들이 절 왜 뽑아주셨는지 아직도 이해가 전혀x1000000 안 갑니다. 아마 입학 석차를 보게 된다면 하위권으로 간신히 붙었을 것 같습니다. 아님 말구요 ㅠㅠ…

최종합격 발표 이틀전부터 잠도 못자고 신경쓰느라 배가 너무 아팠습니다. 발표 당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거의 5분간격으로 합격자 공지란을 계속 새로고침하며 확인했습니다. 처음에 합격자 공지를 확인했을 때는 전산오류인줄 알았습니다. 전산오류가 아님을 확인했을 때는 기쁨보단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20대 내내 하는 일마다 꼬이고 안됐는데 드디어 20대 후반에 하나의 작은 성취를 이뤄냈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아직 대학교 막학기이기 때문에 밀린 과제와 수업을 따라가느라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법학과 복수전공을 괜히 한 것 같습니다 ㅠㅠ 그래도 올해 연말은 기쁘게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네요.

2. 시험 당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준비를 했나요?

<1차 시험>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1차시험 1주일전부터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학기도 병행하느라 더더욱 공부가 안됐습니다. 수능도 실패하고 로스쿨 입시도 실패했고(이것만 해도 총 6년 가량을 썼네요 어휴.…) 나이는 먹어가고 이것마저 안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슬프지만 시험직전까지 저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시험 전날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넷플릭스를 보다가 갔습니다. 시험장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제가 여태까지 썼던 답안들만 한번씩 훑고 시험장에 갔습니다. 한 가지 그래도 자신이 있었던 것은, 입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수강을 시작한 양시래 선생님 외대1차모의고사 수업에서는 그래도 good이상은 꾸준히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비결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7월 중순부터 슬럼프가 왔는지 그 추세가 꾸준히 유지되진 않았습니다. 외대에 도착해서는 ‘그래, 그냥 아는 표현만 쓰고 욕심은 부리지 말자. 못 듣고 이해 못한 내용은 적지 말자.’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가장 약했던 부분인 영어지문 듣고 한글로 요약하는 첫 번째 문제는 지문 자체가 매우 쉽게 출제된 편이라고 생각하여 나머지 문제들도 자신있게 풀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모두 풀고 15분정도가 남았고, 문법 실수는 없는지 등을 검토했습니다.

1차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제가 적었던 모든 문장들이 생생히 기억났습니다. 저는 제가 완전기억능력을 가진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시험지에 썼던 문장들과 표현들이 마치 사진처럼 머릿속에서 생생히 남아있었거든요. 그만큼 집중해서 시험을 치뤘다는 것이겠죠? ㅜㅜ 제가 썼던 문장들을 머릿속으로 반추하면서 ‘아, 관사 빼먹었다! 자동사를 수동태로 써버렸다! 단어 선택이 어색했던 것 같다!’ 등등 실수가 생각나서 그 다음 시험들까지 계속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지나간 것을 한탄해도 소용없었습니다. 한 가지 확신했던 것은, 이번 시험에서 제출한 답안을 양시래 선생님께 제출한다면 파란 줄이 죽죽 그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만큼 실수도 많았고 어색한 표현도 있었는데, 제 생각으로는 양시래 선생님의 채점 기준이 외대 교수님들보다 더 까다로운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1차부터 붙을 생각이라곤 못했는데, 막상 1차를 붙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2차 시험>

- 1차 시험 발표가 있고나서 바로 며칠 뒤에 2차 시험이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외대2차 실전모의고사 수업(김경민 선생님 수업이든, 원장 선생님 수업이든..)을 시간이 없어서 전혀 수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관련 팁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원서접수를 늦게 한 탓인지, 대기실에서 1시간 가량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제 이름이 호명되고 시험장에 들어갈 때는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들어갔습니다. 구술시험장 내부의 분위기는 매우 차가웠습니다. 시험장에는 원어민 교수님 한분, 한국인 교수님 2분이 계셨는데, 불안에 떨고 있을 수험생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스 브레이킹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아이스 브레이킹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 교수님께서 영어로 ‘경영학이랑 법학은 분야가 매우 다른 학문인데 법학을 복수전공한 이유가 있나?’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실 이는 예상했던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통번역사로서 활동하며 경험을 쌓다가 영어 실력을 살려서 미국 로스쿨 진학에 도전해보고 싶다.’라고 답변드렸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제 가슴 속 깊은 한 구석에는 못다이룬 법조인의 꿈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시며 종이에 무언가를 적으셨습니다. 혹시 아이스 브레이킹 때 한 영어 답변도 점수에 포함되나? 아니면 미래의 포부도 평가 요소인가? 라는 별의 별 생각들이 순간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영한통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용은 어떤 논리적 구조가 있던 지문은 아니었던 것 같고, 빈대 창궐에 대한 사실보도 기사였던 것 같습니다. 원어민 교수님께서 지문을 읽어주셨는데, 솔직히 첫 문장만 듣고 멘탈이 박살났습니다. 강의실 구조 때문인지 목소리는 웅웅거리고 교수님 목소리 자체도 중저음에 가까운데다 생각보다 속도도 빨라서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박살나는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핵심 줄기라도 파악했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바로 통역을 시작했는데, 후유증이 남아있었는지 결론부분은 중간에 통역 하다가 아예 기억이 안나 통채로 날려버렸습니다. 날린 분량은 한 30~40퍼센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퍼포먼스도 평소에 연습했던 것의 절반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여기까지 하겠다고 했는데, 곧바로 저에게 아이스 브레이킹 질문을 해주셨던 교수님이 저를 빤히 노려보시며 정확히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때 들었던 문장 그대로 옮긴 겁니다. 저 한 문장이 저의 가슴에 날아와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생각이 안나서 솔직하게 답변했습니다. 감점을 체크하시는 모습이 눈에 아직도 선합니다. 원장선생님이 매번 영한통역때 ‘중간은 부실해도 처음과 마지막은 완벽해야 한다’ 라고 하셨기 때문에, ‘아, 영한부터 박살나는구나' 라는 자괴감에 시험장을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게 너무 아쉬워서 뭐라도 내뱉고 가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꽃이 지더라도 화려하게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간신히 악착같은 오기로 5초정도 멘탈을 부여잡은 다음, 한영통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입시 기간 내내 제일 힘들었던 것이 한영통역이었습니다. 입시 처음시작할 때 저는 영어 문장을 아예 한 문장도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정도의 수준이었기에, 이 부분은 두고두고 힘들었습니다.

분명 오전조에서 먼저 시험을 치고 오신 분들에 의하면 교수님들이 되게 천천히 지문을 읽어주신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오후 조는 예외였던 것인지, 아니면 퇴근해야 하는데 피곤하신 교수님들도 체력이 바닥나셨던 것인지는 몰라도 (제가 시험장에 들어갈 때 거의 저녁 6시 쯤 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제 뒤에는 3명 정도밖에 안남아있었구요..) 지문을 속사포로 쭈욱 읽어주셨습니다. 한국어 뉴스 1.4배속으로 틀은 느낌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자신있어 하던 주제가 나와서 교수님이 한국어를 읽어주시는 대로 요점과 곁다리가 판단되고 어떻게 문장을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이 빨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제가 입시하면서 연습했던 것 중에 제일 잘 나왔고, 이보다 완벽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퍼포먼스가 잘 나왔습니다. 영한 때 표정이 안좋으셨던 교수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시더군요. 한 분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신 것으로 기억합니다.(물론 제 착각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수험기간 내내 어려웠던 한영통역 덕분에 시험을 붙은 것 같아 매우 아이러니 하면서도 신기합니다.

시험 채점 기준표에는 안나와있지만, 아마 멘탈을 얼마나 잘 회복하는지도 분명 평가요소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붙은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시생분들도 멘탈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이 무너졌을 때 이를 빨리 회복하는 데 집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3. 통번역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 때는 작년 8월초였습니다. 매우 무더운 여름이었죠. 로스쿨 입시 시험(법학적성시험, 일명 LEET)에서 또 안 좋은 결과가 나와 집에서 낙담하며 두문불출하며 뒹굴고 있었습니다. 진짜 한심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삼수 실패의 트라우마를 간신히 억누르며 인고의 3년을 보내며 다시 모든 걸 쏟아 준비했는데 3년 내내 결과가 안좋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느님, 저에게 왜 이러십니까?’라는 한탄도 했습니다. 마치 구약성경의 욥의 절규처럼, 이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으나 별 수가 있나요?

제 동기들, 고등학교 친구들도 슬슬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취업했다, 전문직에 합격했다 등 성공 소식이 들려오자 저 자신도 괜시리 급해지면서 또 동시에 그 상황에서 딱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던 이 모순을 견뎌내야 하는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취업상담도 받아보고 직무도 알아봤는데, 전혀 하고 싶었던 것이 없었습니다. 사실 학교에서 경영학을 배우면서 여러 분야를 넓게 공부해봤는데, 사실 진짜 재미없다, 때려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회계는 정말 너무나도 싫습니다. 앞으로도 평생 안보고 살고 싶습니다. 경영학도가 회계를 싫어한다는 시점에서 이미 답이 없지만, 아마 이 시기가 제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는지, 제 동생(지금은 장교로 복무하고 있습니다)이 ‘형, 왜 안되는 걸 계속 붙잡고 있어? 이제라도 형이 잘하는 걸 해봐 제발!’ 라고 일갈했습니다. 물론 제가 잘한다는 게 뭘 뜻하는 지는 알 수 있었죠. 바로 영어였습니다. 동생이 통번역대학원을 준비해보라고 설득했습니다. 동생은 한국외대 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통번역대학원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정말x100 죄송한 말씀이지만, 작년 8월 전까지만 해도 통번역대학원이 뭔지 몰랐습니다. 로스쿨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영어를 잘하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물론 수능 삼수 내내 영어는 계속 만점이나 1등급이었고, 별 준비없이 응시한 토익(로스쿨 입시 용도였습니다)도 못해도 900중반은 나왔습니다. 근데 이건 시험을 잘 보는 것이지, 영어 자체를 잘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전 완전 쌩 국내파인데가 영어 말하기와 쓰기를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동생의 제안이 너무나 터무니없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제안에 대해 몇 달을 고민하다가 우리 학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청강이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양성애 선생님의 기초 번역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한글로 된 것을 영어로 번역하는 게 처음해보는 것이어도 꽤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통역기초반도 청강해보고, 또 다시 한두달을 고민하다가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입시에 뛰어들었습니다. 어차피 나이도 많고 내 꿈은 멀리 날아갔고, 또 다시 로스쿨 입시를 준비할 엄두는 나지 않아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지금 전방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는 제 동생에게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충성!

4. 입시 준비를 시작할 때 자신의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였다고 생각하나요?

- 그냥 전형적인 한국식의 주입식 입시, 시험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수능이랑 토익 고득점이 영어 경험의 전부였습니다. 정작 통대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말하기나 쓰기는 전혀 해보지도 않았고 이 분야는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5. 영어 공부 경력 (영어 전공, 어학연수, 영어권 국가 거주, 영어 활용 업무 등)은 어느 정도 였나요?

전무합니다. 진짜 과장안하고 이 중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영미권에서 나온 게임(주로 스팀게임이나 마이너한 외국 게임들..)을 어렸을 때 자막없이 자주했었는데.. 이게 도움이 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6. 입시를 준비를 시작할 때 다짐했던 것이나 마음 자세 등 어떤 생각을 했나요?

입시 시작할 때만 해도 제 친구들은 이제 직장에 들어가거나 전문직 시험에 합격하여 사회에서 자리잡으며 돈을 벌던 때였습니다. 제 주변인들과 비교하며 출발점이 늦다고 생각되어 열등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각자 인생의 길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일부러 연락도 모두 끊었습니다. 그리고 이 못난 아들을 뭐가 이쁘다고 묵묵히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그래, 뭐라도 해보자. 남들도 잘사려고 저렇게 노력하는데 나도 못할게 뭐가 있나?’ 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당당하게 효도하는 아들이 되고 싶었습니다.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단지 남들이 한다고 다 취준에 뛰어들기보다, 이제라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분야에 투자하여 멋진 인생을 살아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적어도 후회는 남기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리적으로 배수진을 쳤습니다. 이것도 안된다면 바로 기술배우러 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맞벌이 하시느라 퇴근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 밤에 곤히 주무시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와신상담했습니다. 이제는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고요.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에 이제는 웃음꽃을 피워드리겠다고 매일 의지를 다졌습니다.

7. 특별히 이창용어학원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워서 선택했는데, 사실 집이 너무 멀어서 현장강의는 거의 참석하지 못하고 줌으로만 들었습니다.

8. 공부를 하면서 쌓은 나만의 입시 공부 노하우가 있다면?

( WRITING / SPEAKING / NOTE-TAKING등 영역별 공부 방법 및 기타 노하우)

1) 라이팅: 필사(수업자료, 뉴욕타임스나 wsj 기사)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사실 인풋이 너무나도 부족한 상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 이상 뭘 더 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시험 직전까지만 해도 최대한 많은 양의 새로운 글을 계속 필사만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양시래 선생님 모범답안을 달달 외우고 가셨다고 했는데, 저는 우선 최대한 많은 문장과 표현을 채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기에 분야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필사만 했습니다. 필사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dororok tv’라는 채널의 영상을 추천합니다. 이 분도 현직 통역사이십니다. 처음에 필사가 뭐가 좋은 건지에 대해 확신은 들지 않았지만 결국엔 뒤를 돌아보니 훌륭한 영작을 위해서는 인풋을 늘리는게 최선이었고, 필사는 이를 위한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여기에 독해도 꾸준히 해두어 영어 문장의 질서에 대한 감을 익혔고, 무엇보다 양시래 선생님 통대문법을 먼저 수강하여 영문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통대문법 안들었으면 이 합격수기를 작성하지 못하고 있었을 겁니다. 양 선생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2) 스피킹: 사실 지금도 한영 통역이 제일, 너무 어렵고, 단지 2차 한영통역을 잘했던 것은 그저 제가 자신있어 하던 주제가 나와 포텐이 터진, 운이 좋아 붙은 케이스입니다. 이건 제가 확신합니다. 그러니 제 말은 반만 듣고 반은 흘리시길 바랍니다.

입시 초반에는 npr뉴스를 0.8배속정도로 틀고 쉐도잉을 하며 발음과 억양을 잡는데 집중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국내파인데도 발음이 안좋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매우 좋은 것은 아니고, 그냥 학원 수강생 평균정도는 하는 것 같습니다.

쉐도잉은 입시 중반에 접어들며 시간이 없어 못했고, 그 이후에는 그저 수업자료에만 충실했습니다. 녹음하고 틀리면 다시 녹음하는 지루하고 끝없는 과정을 반복했고, 못해도 하루 4시간 이상은 한영통역 연습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말이 정말 하나도 안나와서 울고 싶었고 답답했고, 저의 현재 말하기 실력보다 우수한 실력을 지니신 분들이 입시 초반부터 많이 보여서 스스로 비교하고 자책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없었고, 그저 머릿 속에 들어있는 문장, 표현이 많다면 절반은 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것은 논리적으로, 유연하게 말을 이어가는 연습, 그리고 이 문장들이 입에 자연스레 붙을 때까지 연습만 하면 되니까요. 한영통역 모범답안을 외우기도 하고 어떤건 계속 혼자서 해보는 등 무식하게 했습니다. 아마 제 영어 수준에서 입시를 시작하시는 쌩 순수 국내파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들을 위해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이렇게 암기하고 익숙해질때까지 말하는 과정을 적어도 반년이상 이어가신다면, 그래도 말은 어찌저찌 해보실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실 것이라는 겁니다. 그 과정까지가 너무도 힘들도 지옥같아서 문제지만요. 원장님 말씀대로 방에 틀어박혀서 뭐든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습니다. 다시 되돌아보니 어떻게 이 과정을 견뎠는지 모르겠네요..

3) 메모리: 메모리를 늘리기 위해 따로 훈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수업시간에 발표할 때 최대한 기억해보려고 노력한 것이 전부입니다. 사실 로스쿨 입시를 거치면서 수많은 법학서적과 기타 교양서적을 읽었는데(물론 법학적성시험은 법학지식을 묻지는 않지만, 법 지식을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데다가 애초에 언어이해와 추리논증 독해 지문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려워서 책을 읽어 배경지식을 보충했습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문이 나오면 무엇이 핵심내용이고 무엇이 이를 보충하는 내용인지는 대충 구조가 머릿속에서 그려졌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따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9. 이창용어학원에서 본인에게 가장 도움 됐던 수업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사실 원장선생님의 통역실전 수업과 양시래 선생님의 통대문법, 외대1차 모의고사 이 세 수업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더 들었다간 복습을 제대로 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이 수업들에서 다루는 영어의 양도 무지막지하게 살인적이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수업들 모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선 실제 시험 난이도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가장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통대문법 수업과 더불어 원장선생님의 한영 통역 팁이 가장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글 지문을 들을 때 내 영어 능력 밖의 문장은 굳이 그대로 통역하지 말고 쉬운말로 바꾸거나 아예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한글 지문이 끝나면 이미 머릿속에서 할 말은 정해놓아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 조언들은 입시 초반에는 별 도움이 안 될 수 있지만, 실력이 늘어가면서 무조건 지켜야 할 원칙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우리 학원의 무슨 강의를 듣든, 한국의 영어 강의들 중 가장 뛰어난 강의임을 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0. 입시 준비 기간 동안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요?

(수업, 자습, 스터디 등, 기간에 따라 어떤 비중으로 나누어 공부했는지 등)

- 아침 6시엔 무조건 일어났습니다. 사실 전 계획을 따로 촘촘하게 세워두진 않습니다. 수많은 실패를 거치면서 제가 그렇게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세운다고 다 지켜지는 것도 아니구요. 그저 통역실전 수업날엔 강의 끝나면 이걸 복습하는데 모든 시간을 썼고, 그 다음날 양시래 선생님의 수업이 있다면 또 이를 복습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등 별 계획없이 쭉 시험 전까지 학원 시간표에 맞춰서 지냈습니다. 사실 자료의 양이 너무 많아서 계획을 세울 겨를이 없었습니다 ㅠㅠ

스터디는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존경하고 또 좋아하는 D형과 7월에서 8월 한달 반정도 영한-한영 스터디를 한 것이 전부입니다. 이후에는 제가 복학준비에 학교 생활로 바빠서 스터디를 하지 못했습니다.

11. 이창용 어학원의 담당 선생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모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통번역사이자 영어 선생님들이십니다. 선생님들이 우리나라 영어 교육을 담당하셨다면 현재의 참담한 영어 교육 제도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12. 마지막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두서 없는 긴 수기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실패한 경험도 어떻게든 나중에 자양분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입시를 열심히 준비한다면 무조건 통대에 갈 수 있다는 확신도 솔직히 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이 시험은 운이 상당히 많이 작용하는 시험이고, 또 저보다 잘하시던 분들도 고배를 마시는 시험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바로 이 예측불가능성이 오히려 희망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입시준비를 시작할 때 너무도 부족한 영어실력(아마 제가 처음엔 수강생들 중 꼴찌였을 겁니다. 잘해도 최하위권…ㅜㅜ)때문에 자책도 많이하고 괜히 저보다 훨씬 잘하시는 분들과 비교하며 시간을 낭비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부디, 바라건대 저와 같은 시간낭비를 하지 마시고 그 시간에 문장하나 더 외우시고 입에 붙이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실제 시험결과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도 제가 올해 한국외대에 붙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고등학생 때 겪으셨지 않습니까? 6월 9월 평가원 모의고사 아무리 잘봐도 수능만 보면 미끄러지는 친구들이 한두명이 아니라는 것을요..슬프게도 저도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ㅜㅜ ㅋㅋㅋ

입시 결과에 상관없이, 이 공부는 최소한 영어 실력 자체가 향상된다는 이득이 있습니다. 저도 이 정도로 말하고 쓰게 될 줄은 작년 이맘 때만 해도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다보면 괴롭기도 하고 즐거울 때도 있는 것이, 희로애락으로 물든 통대입시지만, 분명 그 와중에 어려분은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갈 수 있음을 자신합니다. 어느 순간 그나마 입이 열리고, 화려하거나 기교를 부리진 못해도 웬만한 문장은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이젠 시험 볼 준비가 되신겁니다.

여러분의 앞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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