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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송민재, 2018학년도 중앙대 국제대학원 전문통번역학과 합격
수강강좌(교수님) 중앙대 국제대학원 전문통번역학과(이창용어학원) 평  가 ★
등록일 2018.01.16 조회수 6,877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1. 먼저 간단한 합격 소감을 들려주세요.

그간 서로에게 등불 같은 존재가 되어준 스터디파트너 분들, 그리고 한없이 데데하고 부족한 저의 길라잡이가 되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장기적인 꿈을 향해 소소하게 한 발짝 발걸음을 내딛을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이 기쁨을 오롯이 마음에 품고, 겸허히 입학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2. 시험 당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준비를 했나요?
중앙대 통번역대학원의 경우, 시험 과정이 상당히 다양하고 복잡한 편입니다.
 
1차 listening & writing 시험에서 대략 2.x배수를 합격시킨 뒤, 2차 시험에서 1) 번역시험, 2) 순차통역 & 확장질문, 3) 영어 & 한국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이후, 1차 시험과 2차 시험 점수를 합산한 총점제로 최종 합격생을 선발합니다. 제로베이스 점수 산출제가 아니기 때문에, ‘1차에서 턱걸이만 하자’라는 생각조차 위험한 발상이라서, 전 과정에 있어 상당히 기 빨리는 유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1) 1차 시험
중앙대 통대는 타교들과 달리, 1차 시험이 ‘논술형’이라기보다는 ‘약술형’에 가까운 시험입니다. 시험시간 60분 동안 영어 음성파일 3개, 한국어 음성파일 1개가 나오며, 각 음성파일마다 약술 문제가 2~3개씩 이어집니다. 문제별 3~4분 동안 짧은 답안을 작성할 시간이 주어지며, 시험 문제 또한 음성으로 출제됩니다. 그렇기에, 문항별로 3~4줄 안에 매우 순발력 있게 핵심을 간추리는 능력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핵심내용을 잘 담아낸다면 문항별 2~3줄씩만을 작성해도 붙을 수도 있고, 핵심 알맹이가 없다면 7~8줄씩을 작성해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한편, 영어 듣기가 나오면 한국어로 작성하고, 한국어 듣기가 나오면 영어로 작성해야 합니다. A-B 작성 혹은 B-A 작성만 있을 뿐, 절대로 A-A 작성이나 B-B 작성은 없다는 점 유의바랍니다.
제가 응시했던 해에는 문제별로 인종차별, 4차 산업혁명 등의 듣기 지문이 출제되었습니다. 중앙대 1차 약술문제는 총 문제가 10개로 상당히 많은 만큼, 정말 예상치 못했던 지엽적인 내용이 출제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listening을 할 때 note-taking을 매우 꼼꼼히 하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 문제에 관한 지문에서 정말 가볍게 지나가는 말로 ‘NFL 콜린 캐퍼닉 사건’이 언급되었다면, “NFL Colin” 정도는 휘갈겨 써두기를 추천합니다. 디테일한 부분이 마이너하다고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버렸다간, “오늘 동북아시아의 기후는 좋고 엔화 환율도 좋아서 일본 여행을 가고 싶은데, 그렇다면 올해 트럼프 대통령의 나이에서 J.F.K. 대통령이 암살당했을 때의 나이를 뺀 숫자는?”이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급의 기분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훨씬 더 중요한 chunk를 날리지는 않으시길).
중대 1차에서 요하는 ‘알맹이를 추려내는 능력’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미리 스터디파트너와 함께 이를 연습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가 신문기사를 준비해 서로에게 이를 읽어주고, 확장질문 3개 정도를 출제하는 방식으로 연습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는 전체적인 입시 준비를 꾸준히 탄탄하게 해왔다는 전제 하에, 1차 시험 1주일 전에 시작해도 무관합니다.
 
2) 2차 시험
1차 필기시험에서 저는 A 그룹에 속했었는데, A 그룹의 70명 중에서는 24명이 2차 시험에 진출했습니다. ‘이제 이 A 그룹의 24명 중에서 대략 절반 꼴이 선발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전체 인원 중 정확한 배수 선발은 알 수 없었으나, 이 수치가 준비생 분들에게 훗날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기 바랍니다).
 
2-1. 번역 시험
중대 통대는 통역 전공과 번역 전공을 통합해서 선발하고 졸업 시점에 전공이 부여되기에, 통역 전공을 희망하더라도 입학시험에서 번역시험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60분 동안 한영번역 1개, 영한번역 1개를 해내야 합니다. 신입생을 뽑는 시험이라 난이도는 어렵지 않았지만, 시간은 상당히 촉박한 편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넛지 효과’를 다뤘던 한영번역 지문입니다. 행동경제학자 ‘리차드 세일러’ 교수가 여러 번 언급되었는데, ‘세일러’라는 이름이 영어로 Sailor인지 Sailer인지 Thalor인지 Thaler인지 확인을 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즉, 한국어로만 뉴스를 접한 학생인지, 혹은 영어로도 신문을 읽어온 학생인지를 상당히 subtle하게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물론 사람 이름 철자를 틀리게 썼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떨어뜨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영한 번역은 일본의 노령화와 경제성장률에 관한 인구통계학 지문이었는데, 이웃나라 이야기라 친근하기도 했고, 학사 응시생 수준에게는 무난한 용어들이라, 별 어려움 없이 번역이 가능했습니다. 아마 중대의 모든 입학시험 과정들 중, 번역 시험의 난이도가 가장 낮았던 것 같습니다.
번역시험이 끝난 뒤, A그룹 수험생 전원은 안내에 따라 종합 대기실로 이동했습니다.
 
2-2. 순차통역 시험
순차통역 시험에 앞서, 우선 종합 대기실에서 4명씩 한 조로 편성된 후, 그룹 대기실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30분을 추가로 대기한 뒤, 옆 강의실인 703호로 이동해 통역 부스에 들어갔습니다. 703호 교실에 있는 통역부스 4곳에 그룹원이 골고루 한 명씩 들어가는데, 부스 옆면 벽을 통해 다른 응시생들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희미하게 넘어오기에, 이 또한 심리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사전에 숙지바랍니다.
통역 부스 안에는 추후 채점을 위해 통역용 마이크와 MP3로 이중 녹음을 하는데, 빨간 불빛이 들어온 마이크 버튼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건드리지 않기 바랍니다(실격이 되고 싶을 경우에는 누르셔도 무방합니다).
부스 앞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교수님들이 구두로 문제를 출제하면, 순차통역을 하면 됩니다. 영한 통역의 경우 퍼거슨 교수님이 1~2분 내외의 지문을 읽어주시는데, maximizer & satisfier에 대한 지문이 나왔습니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고 배경지식도 있었기에, 편하게 통역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원종화 교수님의 확장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 확장 질문은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말하면 됩니다. 당시,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1주일 연기되었었는데, 정부의 수능 연기 조치에 대한 견해를 30초 동안 생각한 뒤, 영어로 말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불과 하루 전에 속보가 떴던,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따끈따끈한 이슈가 출제되어 사뭇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원래 중대 2차 시험 하루 전이 변경 전 수능 예정일이었습니다). “전국 규모 시험의 행정처리 안정성을 위해 시험일 준수를 고집하다가는, 제2의 세월호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매우 합당했다고 본다.”는 요지의 의견을, 1~2분 분량으로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마지막 한영 지문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or 차관의 연설문이었습니다. 이번 시간은 영한 통역에 비해 분량이 2~3배가량 길기에, 이례적으로 note-taking이 허용된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입학시험에서 노트 테이킹을 허용해준다는 사실에, 사뭇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신 디테일을 모두 잡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훨씬 더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내용은 장애인 어린이들을 위한 ‘사랑의 장학금’ 제도에 대한 축사 연설이었습니다. 학부모 · 교사에 대한 감사 인사로 시작해, 선천적 장애가 있었으나 하버드 장학생으로 졸업해 평생을 장애인 교육복지에 헌신한 헬렌 켈러의 교육관도 등장했습니다. 생각보다 호흡이 긴 연설문이었습니다. 연사에 빙의해서 감정을 살리며, ‘성우 면접’을 본다는 느낌으로 후반에는 격앙된 어조로 목소리 연기를 했는데, 영한통역에 비해 스스로 더 만족스러운 통역이 나왔습니다.
순차통역이 모두 끝난 뒤, 각자 마이크를 끄고, 노트테이킹 용지를 제출(노트테이킹이 허용되지 않는 파트에서 혹시나 메모-부정행위-를 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 같았습니다)한 뒤, 방금 각자 부스에서 통역을 했던 4명이 이제는 서로 나란히 앉아 그룹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2-3. 영어 & 한국어 면접
사실 2차 시험들 중에서는 가장 배점이 낮은 유형이라 봐도 무관합니다. 통번역대학원은 입학시험도 졸업시험도 ‘통변역 실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인 인터뷰에서 긍정적 어필을 한다면, 분명 충분히 +@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실제로, 합격생 예비대학 OT 때 퍼거슨 교수님이 저를 기억하기도 하셨습니다).
면접 질문은 매 해 주제가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거에는 사자성어를 영어로 풀어서 설명해보라는 문제가 출제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올해의 경우엔 ‘영어 자기소개’와 ‘지원서 기반 한국어 질문’ 두 가지, 그리고 이후 확장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원어민 교수님이 질문을 하시면 영어로, 한국인 교수님이 질문을 하시면 한국어로 대답을 하면 됩니다(이번에는 A-B나 B-A가 아니라 A-A 혹은 B-B입니다).
자기소개는 1분 정도를 한다는 생각으로, 통번역대학원 지원 동기와 영어 학습 배경 등에 대해 자유롭게 설명하시면 됩니다. 한국어 질문의 경우,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지원서를 보니 학부에서 OO학을 전공했는데, 이 전공이 통번역대학원과 어떤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이 나갔습니다. 제게는 지원서 기반 질문 대신에, “자기소개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며, 제 ‘인생철학’에 대한 확장 질문을 하셨습니다. 해당 내용은 다소 개인적인 부분이라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3. 통번역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원래 대학교 3학년 때 까지만 해도 언론사 기자를 지망했었고, 대한민국 정부포털 정책브리핑 웹사이트에 국무총리 민관합동회의 취재 기사를 싣거나, 메이저 신문사에서 콘텐트기획팀 소속으로 대외활동을 하는 등, (한국어) 글쓰기 관련 활동을 꾸준히 해왔었습니다. 제가 발행한 글을 보고 아리랑TV 방송작가, JTBC 방송작가, 지역 월간지 대표이사님 등에게서 연락이 오기도 했고(ex. 제 글을 월간지에 싣고 싶다, 제가 인터뷰한 외국인 취재원을 연결해 줄 수 있느냐 등), 한국어 작문 실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영어는 그저 부수적인 sidekick일 뿐이었지, 특화를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만일 별 이변이 없었다면, 대학교 4학년이 되면 추후 ‘국제부/정치사회부 기자’가 되기 위해 언론고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통번역대학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2016년 12월 무렵, 국내 모 영어언론사에서 진행했던 뉴욕타임스 공모전 콘텐트 건과 관련해 ‘영어를 background로 한 전문직’ interviewee가 필요했고, 외교관 혹은 동시통역사 인터뷰를 따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2017년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통알못’으로 더 유명한, CNN-YTN 힐러리-트럼프 미 대선토론에서 트럼프 후보 목소리 동시통역을 맡았던 정OO 국제회의통역사님께 인터뷰 요청을 드렸고, 정말 감사하게도 바쁘신 와중에 오프라인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당시 정 통역사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통번역대학원 출신 국제회의통역사가 상상 이상으로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동시에 통대 입시는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생생하게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올해 초 J 영어신문사에서 마케팅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해외 특파원으로 활약하거나, 혹은 한국어/영어 언론사 기자로 진출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근무기간 도중 깨닫게 되었고, 통번역대학원 진학에 대한 결심을 굳혔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최종적인 진로는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통번역대학원에 재학하는 기간 동안, 학위 커리큘럼대로 전문 통번역사로서의 커리어를 쌓을지, 통번역 석사 취득 이후 언론사로 진출할지에 대해서는 추후 꾸준히 고민을 해 볼 생각입니다.
+ 번외로, 우리 학원의 김태훈 선생님을 제가 쓴 기사에 interviewee로 실었던 재미난 추억도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한 인공지능 번역의 발전에 관한 통번역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 당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셨던 김태훈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민국 정부포털 정책브리핑: 사람 대 인공지능 번역 대결로 살펴본 제4차 산업혁명
http://reporter.korea.kr/newsView.do?nid=148829746)
 
 
 
4. 입시 준비를 시작할 때, 자신의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였다고 생각하나요?
 
1) 통번역대학원의 존재를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 스스로의 영어 comfort zone에 빠져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과 학부생 시절, 동기들 사이에서는 영어를 잘 하는 편이었고, 대학교 동기들 중에서도 수많은 외고생, 재외국민, 영어특기자 출신들이 오히려 제게 영어를 물어보곤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저는 일상 영어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안주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통대 입시를 시작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 스스로가 그저 지구 내핵을 뚫고 안드로메다로 들어간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어 과외와 영어토론 학원 알바로 돈 받고 일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바로 겸허한 자세로 차근차근 배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 한편, 통대 입시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현재의 제 부족한 영어 실력만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고, 한국어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험생활을 시작한 이후, 일회성 혹은 고정 스터디 멤버들에게서, 특히 장기 해외파 수험생들에게서 “한국어를 되게 잘하시는 것 같아요”라는 칭찬을 듣거나, 현재는 각자 타 통대에 합격하신 장기 스터디 파트너 분들에게서 “기사 문체의 한국어가 나와서 듣기에 좋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영어에만 올인 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that the world has never seen”이라는 표현을 통역할 때, “이 세상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이라고 어색하고 늘어지게 통역하는 것보단, 문맥에 따라 “전무후무(前無後無)한”이라고 통역해 프레임을 아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과정에 있어서 정제된 한국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그렇기에 “통대 수험생활에 있어서 내 영어실력은 비교열위지만, 한국어는 비교우위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통시 생활에 임했던 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해외에 5년 미만 살다 왔으면 해외파가 아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존재하는 통대 입시 바닥에서, 국내파라고 해서 결코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감을 잃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저는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통대 합격생들은 모두 영어도 통역도 말도 안 되게 잘 하겠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의자’에 앉은 제 실력을 스스로 돌이켜보면, 그게 절대 사실이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통번역의 영역은, 영원히 스스로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단련해야 하는, ‘평생 공부(라 쓰고 개미지옥이라 읽는.....읍! 읍!)’인 것 같습니다.
 
 
 
 

5. 영어 공부 경력(영어 전공, 어학연수, 영어권 국가 거주, 영어 활용 업무 등)은 어느 정도였나요?
 
아버지의 직장 일로 인해,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2년간 거주하며 중학생 시절(6학년, 7학년)을 보냈습니다. 당시 부모님의 언어 철학은 “한국인으로서 모국어인 한국어를 잊으면 안 된다”였기에,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어 사용을 고수했습니다. 귀국 후 학년을 꿇고 싶지 않았기에, 친구들과 놀거나 학교숙제를 한 이후에도, 영어공부에 집중하기보다는, 시간을 정해 EBS 인터넷 강의를 보며 대한민국 정규교육과정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찌 보면 ‘순수 몰입형 영어 학습’의 기회를 포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귀국 후 고등학생 때 꾸준히 모의고사 & 수능 언어 1등급을 유지하며 한국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게 되었다는 점은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대입 이후 교환학생은 일절 가지 않았기에 해외 거주 경험은 2년이 다이지만, 학부생 시절 모교 국제 계절학기 조교, 교내 영자신문사 모니터링 요원, 영자신문사 관련 대외활동 및 인턴, 한중일 국제창업경진대회(중국 베이징) 참가, 한국전쟁 참전용사 후손 초청 UN 평화캠프 참가 등, 국제 경험을 꾸준히 쌓으며 글로벌한 영어 환경에 꾸준히 스스로를 노출시켰습니다.
이는 ‘영어’라는 언어 자체보다는 ‘국제 경험’에 흥미를 느껴 했던 경험들이었는데, 돌이켜보면, 통대의 존재를 깨닫기 전부터 간접적으로나마 통대 입시에 필요한 기초적인 영어 실력을 조금이나마 다져 놓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교류를 하게 된 수많은 외국인들에게서 “내가 알고 지낸 한국인들 중에서 가장 영어를 잘 한다”라는 칭찬을 듣는 경우는 더러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당시엔 통번역대학원 입시에 감히 비벼볼 수 있는 실력은 결코 되지 않았었습니다.
 
 
6. 입시 준비를 시작할 때의 다짐이나 마음 자세는 어땠나요?

저는 ‘합격’ 그 자체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뽑힐 자격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자연스레 합격이 따라오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수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합격만을 위한 잔머리 전략이 운 좋게 맞아떨어져서 덜컥 붙어 봐야, ‘어차피 입학 후 남들보다 몇 배로 고생을 할 것이 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고로, 전 만약 올해 불합격을 하더라도, 오히려 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차근차근히 입시에 임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n수생이 흔한 이 입시 바닥에서, ‘실력’과 ‘합격’에는 분명 ‘양의 상관관계’는 있으나 반드시 그것이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직 · 간접적으로 느꼈기에, 최악의 경우를 염두하며, 3년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입시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2차 시험을 끝내고 나오면서 마음속으로나마 합격을 확신했고, 실제로도 복수 합격 소식을 듣게 되어 한없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7. 특별히 이창용어학원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저는 주변 스터디파트너나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수능 재수생에게 강남O성 학원이 있다면, 통대 입시생에게는 CY English가 있다”는 말을 즐겨 하곤 합니다. 저는 원래 ‘화합 추구형’ 성향이라서 경쟁적 환경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강한 우물에서 강하게 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업계 1위 학원을 택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도 그랬지만, 경쟁 환경에 놓이더라도 딱히 그 누구도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같은 교실의 학우/원우들은 모두 “위아더 lovely 월드”라는 생각을 하기에, 수험생활 과정에 있어 사람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는 없었습니다.
물론 학원에 첫 발을 내디뎠던 등록 초반에 coverage가 말도 안 되게 낮았을 때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기도 했으나, 첫 달부터 ‘level 3 실전반’을 다니며 강하게 컸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원을 다니는 것은 실력파 선생님들에게서 양질의 수업을 듣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우수한 실력의 수강생들과 스파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초반까지만 해도 ‘수업만 듣고 연습은 그냥 독학을 할까’ 싶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다니다 보니, 점점 몇몇 분들께서 같이 스터디를 하고 싶다고 제게 말을 걸어주셨고, 그 덕분에 몇 개월간 함께 ‘으쌰으쌰’하며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펼쳐졌던 것 같습니다.
 
 
 
8. 공부를 하면서 쌓은 나만의 입시 공부 노하우가 있다면?
 
아무리 의욕이 나지 않는 날이더라도,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어떻게든 스스로를 영어에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쉬기로 결정을 한 날에도, 극장에 가서 영어권 외화를 관람하거나, 집에서 Netflix로 자막을 없애고 (혹은 영어 자막을 깔고) 영상을 시청한다거나, 대중교통 이동 때 스마트폰으로 CNN을 시청한다거나 하며, 톱니바퀴의 윤활유가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흐름을 끊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제가 7월 말에 상당히 뼈저리게 느꼈었는데요. 1차 시험을 약 3개월 앞둔 7월 무렵, 일본 정부의 초청을 받아 해외연수를 다녀올 기회가 있어, 주한일본대사관으로부터 전액 지원+용돈까지 받고 일본에 9박10일을 다녀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공짜 해외여행 힐링’을 한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고, 물론 아직까지도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만, 통대입시에 있어서는 엄청난 치명타였습니다. 일본어 환경에 10일간 노출되다 보니, 귀국 후 거의 보름 정도는 영어 통역에 대한 감도 못 잡고, 진심 나사가 풀려서 다녔습니다. 당시 스터디파트너한테서도 “일본 다녀오더니 영어통역에 대한 맛이 간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불과 10일을 쉬었는데도 그 기간보다 훨씬 더 오래 정신을 못 차렸던 아찔한 기억을 돌이켜보면, “통역 연습을 하루만 쉬어도 내가 알고, 이틀만 쉬어도 스파가 알고, 일주일을 쉬면 청중이 안다”는, almighty한 현직자 선현(先賢)들의 가르침은 결코 허투루 들을 것이 아니구나 싶습니다.
 
 
 
9. 이창용어학원에서 본인에게 가장 도움 됐던 수업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최대한 여러 수업을 골고루 듣고 싶었기에 1~2달만 들은 수업도, 수개월간 장기적으로 들은 수업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꼽도록 하겠습니다.
 
[원장 선생님 통역종합 주말반 & 양시래 선생님 1차 대비반]
통대입시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수많은 ‘엉터리 영어’를 교정할 수 있어 상당히 좋은 조합이었습니다. 원장 선생님의 ‘말’과 양시래 선생님의 ‘글’을 통해 ‘영어 쿠세’를 없애 나가는 과정은, 통대 입시 뿐 아니라 전체적인 영어 점검 차원에서도 상당히 건설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수개월을 다니던 도중, 이창용 원장님과 양시래 선생님이 소싯적에 스터디파트너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두 분의 ‘케미’를 상상하다가 빵터져서 더 즐겁게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Ron 선생님의 ICI 수업]
Ron 선생님의 Intensive Course for Interpretation 수업은 상시 열리던 수업은 아니지만, 통대 입학시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자료를 다룬다는 점에서, 강하게 클 수 있어 좋았던 수업입니다. 정원 제한이 6명이라 쉴 새 없이 통역 순서가 돌아온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들었습니다.
+ 하루는, 제가 ‘음주운전’과 ‘소뇌 손상’에 관한 통역지문을 맡은 적이 있는데, 한글 텍스트가 ‘소뇌’라는 단어를 너무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 편법으로 ‘a certain part of brain’이라고 피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울며 겨자 먹기로 ‘소뇌’를 ‘um... small brain?’이라고 통역했는데, 교실 수강생 전원이 빵터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전두엽, 측두엽, 후두엽, 대뇌, 소뇌’ 등 뇌구조를 통째로 암기해버렸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원장님 수업에서 ‘원숭이 뇌와 인지과학’에 관한 한영 지문이 나왔을 때, ‘대뇌 전두엽 피질’이 등장한 문장에서 “cerebral cortex”와 “frontal lobe”라는 단어를 모두 살려낼 수 있게 되어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경민 선생님 2차 실전반]
김경민 선생님 특유의 카리스마와 수업 진행 방식으로 인해, 제가 여태 들었던 모든 수업들을 통틀어 가장 긴장감이 높았던 수업입니다. 덕분이 이 수업 또한 ‘강하게’ 클 수 있어 좋았고, 담력을 기르기도 좋은 수업인 것 같습니다.
정원 12명 중에서 계속해서 저 혼자만 남자였던 점도, 담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른 수강생 11명 중에서 누가 통역 실수를 하더라도, 음성만으로는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는데, 제 목소리는 너무도 distinguishable한 XY 염색체의 중저음이라, 통역을 망쳐도 내가 아닌 척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제발 서로에게 쉴드가 되어줄 남자 한 명이라도 있어라’ 싶어서 다음 달에 일부러 시간대를 옮겨봤는데도, 여전히 나홀로 외계인... 어쩌다보니 모든 수업을 통틀어 최고로 밸런스 붕괴였던 성비 ;ㅁ;
뭐 아무튼 이 또한 독특한 경험이었고, 앞으로 통역 업계의 성비에 익숙해질 수 있게끔 해 준, 수업 내용 외적으로도 도움이 되었던 과목인 것 같습니다.
( + 에피소드: 9월에 새로 짰던 스터디 파트너 Y님이 첫 스터디 때 “저희 같은 수업 들었었죠?”라고 하셨는데 “네...? 무슨 수업이요?”라고 되물었다가 “저희 지난달에 김경민 선생님 같은 수업이었잖아요.”라서 하셔서 “아.....!” ) 이 자리를 빌려, 당시 classmate였음을 못 알아봤던 Y님에게 소소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_@
 
 
 
10. 입시 준비 기간 동안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요?
  
[2017년 상반기]
연 초에는 학기 병행형 인턴쉽과 4학년 2학기 생활, 그리고 대외활동을 병행하느라 통대 입시에 시간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주말에 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통대 입시와 언론고시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을 하던 때라서, 당시 생활이 ‘수험생활’이었다고 말하기는 부끄럽기에, 이 시기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반년 뒤부터는 앞서 3번 문항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무조건 통대 입시를 뚫겠다.’는 결심을 한 뒤, 제대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2017년 하반기]
7월에 방일연수 프로그램을 다녀오고 8월에 보고회를 진행한 뒤부터는, 수험생활 외적인 변수들이 거의 다 정리되었습니다. 8월에는 계절학기 6학점, 9월부터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복수전공으로 인한 5학년 1학기)를 병행하기는 했으나, 어차피 이제는 남은 졸업학점이 2학점밖에 되지 않아서, 사실상 온전히 통대 입시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실질적인 대학생활이 끝나고, 정신을 차리니 이제 2~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심적 압박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어차피 수험생활에 온전히 올인 할 수 있는 여건이 나오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기에, 무조건적으로 뒤쳐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최후의 2~3개월 동안에는 정말 ‘진퇴양난의 자세로 목숨 걸고 한다.’는 심정으로, 삶이 피폐해질 정도로 수험생활에 집중했습니다. 정말이지 9~10월 두 달 만큼은, 대학교 같은 과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친구들보다 훨씬 열심히 하자는 심정으로 임했습니다. 통대입시 1차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매주 며칠 꼴로 학원 셔터가 올라갈 무렵 등원했고, 셔터가 내려갈 무렵 귀가했습니다.
 
[부작용과 교훈]
다만, 이 같은 마지막 두 달은 건강 측면에선 독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챙겨먹으면 다행일 정도였고, 던킨 도너츠 한두 조각과 베지밀 한 팩으로 하루를 보냈던 적도 있습니다. 당시 저는 ‘남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매일 스터디 3개 이상을 채워 넣고, 11월에는 고정적인 1:1 스터디파트너가 이미 6명 정도였음에도 추가적으로 1회성 스터디 파트너를 계속해서 구해댈 정도로 몸을 혹사시켰는데, 이는 오히려 적나라한 performance와 coverage 하락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눈에는 다크써클이 맺히고, 안색도 몰라보게 나빠져서, 11월 무렵에는 스터디 메이트들이 진지하게 제 건강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멘탈은 튼튼한 편이라 정신적으로 힘든 점은 없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못해 영혼이 갉아 먹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다행히 뒤늦게라도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대체 왜 난 전력질주를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늦잠도 푹 자면서 일정에 조금씩 숨통을 터줬습니다. 그러자 마지막 순간엔 다시 performance가 돌아오기 시작했고, 아무쪼록 최종 결과가 잘 풀려 상당히 다행스럽습니다. 어찌 보면 초시 합격을 위해 무리를 하면서까지 건강을 포기했는데, 돌이켜보면 일정 부분은 깊은 후회로 남는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연 초를 입시 차원에서는 너무 의미 없게 보냈기에, 뒤늦은 후회를 하고 나머지 시간을 스파르타로 보내느라 피치 못한 선택이었지만, 만일 이 글을 읽는 예비 수험생 분들이 있다면, 부디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규칙적인 계획을 짜시고, 스터디는 하루 최대 2개를 넘기지 않기를 권장합니다. 하루 3회부터는 집중력 저하로 인해 한계효용이 마이너스를 달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11. 이창용 어학원의 담당 선생님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몇 달 연속으로 수업을 들었던 선생님들의 경우, 웬만한 대학교 교수님들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신기합니다. 부족했던 제가 꾸준히 단련을 할 수 있게끔 디딤돌 역할이 되어주신 선생님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이창용 선생님, 양시래 선생님, 김태훈 선생님, Ron 선생님, 김경민 선생님, 강민수 선생님, 허훈 선생님, Nate 선생님, 뒤늦게 수업을 알게 되어 1개월만 수강한 선생님도, 거의 1년을 들은 선생님도 계신데, 이 기회를 빌려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12. 마지막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통번역대학원 입시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를 몸소 체감할 수 있는 수험생활입니다. 시작 때에는 각자의 영어 근자감이 하늘을 찌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런 만큼, 마음 맞는 스터디파트너를 잘 찾아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멘탈을 잡고 잘 버티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마음가짐 측면에서, 국내파 분들은 해외파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접어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쟤는 해외파라서, 쟤는 오래 살다 와서 붙었어.”, “나는 국내파라서 불리해”라는 자격지심만 안 가져도, 이미 절반은 성공이라 봅니다. 통대 입시는 해외에서 오래 살다 왔다는 사실만으로, 혹은 영어를 잘 한다는 사실만으로 붙는 시험도 아니며, 타인의 영어 실력, 혹은 해외 배경에 대해 시기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부족한 실력에 대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라 봅니다.
한국에서 평생을 산 고3 수험생들 사이에서도 언어영역은 1등급에서 9등급까지 갈립니다. 한국에서 평생을 산 성인들 중에서도, 한국어에는 “몇일”이라는 단어가 존재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거나(cf. “며칠”만이 옳은 표기법입니다), “돼요(o)/되요(x),” “가게에 들렀어(o)/들렸어(x),” “잠시 들를게(o)/들릴게(x),” “웬만한(o)/왠만한(x)” 등을 구별 못하는 사람이 속된 말로 ‘천지삐까리’입니다.
마찬가지로, 해외파 중에서도 엉터리 영어를 사용하는 분들 또한 정말 많구요. 통대 합격권의 해외파 분들은, 오늘날의 국제화 시대에 정말 넘치고 넘치는 해외파들 중에서, 최고로 정제된 실력의 언어 치환 능력을 탑재한 분들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중 최상위권’만을 보고 그게 전체인 양, 스스로의 자존감을 갉아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그럴 시간에 본인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훨씬 건설적이라 봅니다.
 
 
[ 마무리하며 ]
언어 전문직을 향한 꿈이 있다면, 통번역대학원은 정말이지 괜찮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비트코인은 ‘1) 넣을걸’이라고 후회하는 순간에 ‘2) 넣을걸’이라고 후회하는 순간에 ‘3) 넣지 않았음’에 대해 ‘4) 후회’할 수 있다면, 통대입시는 ‘해볼걸’하는 순간에 바로 발을 넣어본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라 봅니다.
물론 노력에 대한 보상(합격)이 반드시 따라오는 시험은 아니지만, 스스로 냉철한 자아진단을 한 뒤, 통대입시를 위한 객관적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 하에, 꿈을 품고 시작하는 것은 언제든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어차피 한두 달 정도만 다녀 봐도, self-diagnosis에 대한 답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통번역대학원 진학은, ‘영어 전문가’가 범람하는 오늘날 사회에서 ‘영어 공신력’에 대한 필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인 것 같습니다. 추후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어린 응원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자아자 파이팅!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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